우주는 정말 내 소원을 듣고 있을까? 확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내 마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확언은 이루어질까?
나도 해봤다.
'나는 풍요롭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번다.'
노트에 매일 백 번씩 적었다. 돈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이미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보려고도 했다.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슬슬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돈 버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이렇게 해서 돈이 들어온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겠지.'
결국 나는 노트를 덮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했다. 책을 읽어 보면 확언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있고, 유튜브에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모두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왜 나는 안 된 걸까?'
정말 우주는 내 소원을 듣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어느 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약 정말 우주가 내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면, 도대체 어떻게 돈을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질까?
드라마처럼 이름도 처음 들어본 먼 친척이 세상을 떠나 유산을 남겨줄까?
아니면 돈 많은 친구가 갑자기 "이 돈은 네가 가져." 하며 몇 억 원을 건네줄까?
생각할수록 웃음이 났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간도 있고, 공간도 있고, 물리법칙도 있다. 그렇다면 우주도 그 법칙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 순간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돈이 들어올 통로를 내가 하나도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주가 정말 내 소원을 응원한다 해도, 돈이 들어올 길이 하나도 없다면 무엇을 통해 나에게 보내줄 수 있을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흩어진 마음
나는 입으로는 풍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지?'
'난 돈 많은 친척도 없는데.'
'부자 친구도 없고.'
'솔직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확언은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확언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도 숨어 있었다.
'돈이 많아지면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돈은 왠지 욕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적당히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때 깨달았다. 내 안에는 하나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풍요를 원하는 마음도 있었고, 풍요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자유를 꿈꾸는 마음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해 보았다.
'나는 정말 워런 버핏처럼 큰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어쩌면 훨씬 단순했다.
가고 싶을 때 여행을 갈 수 있고, 가격표를 보지 않고 책 한 권을 살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삶.그 정도의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원한 것은 엄청난 돈이 아니라, 자유였던 것이다. 나는 돈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유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조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확언은 무엇일까?
확언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확언이 우주를 설득하는 주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언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는 풍요롭다.' 라고 썼을 때 마음속에서 '아닌데.' 라는 목소리가 올라온다면, 그 목소리가 바로 내가 바라봐야 할 마음인 것이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두려움, 부족함, 오래된 믿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확언은 거짓말을 반복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마음을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
내 안에는 하나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여러 마음이 함께 살고 있었다. 질문이 모호하면 답도 모호하다. 마치 AI에게 질문을 할 때도 그렇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데, 어떻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주도 비슷한 것은 아닐까.
확언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
우리 안에는 오랫동안 쌓여 온 믿음들이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 실패했던 기억, 부모와 사회로부터 배운 생각들.
'나는 부족하다.'
'돈은 힘들게 벌어야 한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믿음들은 너무 오래 함께 있었기에 어느새 진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새로운 소원을 품어도 오래된 믿음이 계속 끌어당긴다. 확언은 그 오래된 믿음과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이다. 하루 만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자신의 진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오래된 믿음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확언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누구를 속이기 위해서도 아니다. 가장 오래 설득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풍요를 받아들여도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자유를 선택해도 되는 사람이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적의 시작
확언이 현실을 반드시 바꾼다고 나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 사람은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적'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확언은 우주를 움직이는 주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 안에는 어떤 마음이 살고 있는지,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그리고 아직도 붙잡고 있는 두려움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확언을 한다. 흩어져 있는 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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